[조경칼럼] 기후변화시대, 도시 인프라스트럭처의 조경적 접근
[조경칼럼] 기후변화시대, 도시 인프라스트럭처의 조경적 접근
  • 김정윤 하버드 GSD 교수
  • 승인 2023.05.23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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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앤트워프시 사례로 톺아보는 조경적 접근의 잇점
도시 내 여러 문제, '조경'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김정윤 하버드 GSD 교수.

보스턴의 전철 네트워크 (일명 'T') 는 미국 최고령이자, 세계에서도 런던 다음으로 오래 된, 지상과 지하를 넘나들며 19세기 말부터 보스턴 사람들의 발이 돼 왔다. 
오래된 만큼, 그간의 도시 발전과정에서 더 이상 쓰이지 않고 방치된 터널, 플랫폼, 선로 등이 무려 63곳에 달한다. 

이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설계과목을 개설해 보자는 제의가 우리 대학원에 들어왔을 때, 도시계획 및 설계학과(Department of Urban Planning and Design)의 학과장인 라훌 메로트라(Rahul Mehrotra) 교수는 조경학과 교수인 나에게 이 과목을 맡아보겠냐고 물었다. 
어릴 때 지질학자를 꿈꾸었던 나는 조경전문가가 된 지금도 여전히 지하 공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그래도 흔히들 토목이나 도시계획, 건축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지하의 버려진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설계수업을 왜 나한테 해보라고 했는지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간명했다. "어느 한 업역에서 다뤄서는 좋은 방안이 제시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랜드스케이프의 관점에서는 구조, 교통, 공공장소, 기후변화 등의 여러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믿고 당신이 그 적임자에요.“

그리하여 시작된 2년에 걸친 ‘지하, 지상, 그리고 그 너머: 도시형태와 경험으로서의 버려진 지하철 인프라스트럭처(Below, Above, and Beyond: Revealing the abandoned underground subway infrastructures as urban form and experience)’ 설계과목은 실제로 다양하고 흥미로운 설계안들을 만들어냈다. 

이 스튜디오를 진행 중이던 2022년 봄 어느 날, 앤트워프(Antwerp)시의 공무원인 샤나 드브록(Shana Debrock)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앤트워프 대학교(University of Antwerp)의 박사과정생이기도 한 그는 내 연구에 큰 관심을 보였고, 특히 내가 실무를 하는 조경가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앤트워프는 벨기에의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도시의 해변에 위치한,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앤트워프 항구로 향하는 매일 8만여 대의 화물트럭과 20만대의 자동차들로 인해 유럽 최악의 교통체증을 겪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진행되어 왔는데, 특히, 현재 계획되고 있는 7.5km의 지하 고속도로(일명 'A102')는 완공 시 교통체증을 해소시켜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앤트워프 대학의 연구진과 시민단체들은 이 지하 고속도로가 지상부의 도시공간 및 녹지체계와 반드시 연계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조경적 접근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올 봄 학기에 하버드 대학교와 앤트워프 대학교의 공동 스튜디오가 개설되었고, 나는 12명의 내 수업 학생들에게 조경의 프레임워크를 통해 A102가 지상부 공공장소 및 커뮤니티의 일상에 기여하도록 제안하기를 주문했다.
지난 5월 1일에 있었던 설계발표회에서는 A102의 일부 차로를 지역의 쓰레기, 지상부 농수 및 생활용수의 처리시설로 설계하고 이들이 집합적으로 지상부의 녹지체계와 연계되도록 한 제안, 지하 고속도로에서 생성되는 오염된 공기가 바이오 필터링을 통과한 후 지상으로 배출되도록 단면과 식생을 설계한 제안 등이 발표됐고, 그날 참가했던 10명의 심사위원들은 모두 기후변화시대의 도시 인프라스트럭처에서 '조경적 접근(landscape architectural framework)'이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는지를 본 것에 고무되었다. 

(위로부터) 지난 1일 열린 A102 설계발표회에서 발표된, 조경의 프레임워크를 통해 A102가 지상부 공공장소 및 커뮤니티의 일상에 기여하도록 제안한 아이디어들.

나는 이러한 것들이 절대 '학교에서만 가능한' 일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실무를 아는 조경가이기에 가능했던 수업이었고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보스턴에서, 앤트워프에서, 혹은 서울에서 인프라스트럭처가 공공장소의 체계로 들어오는 일을 실현시킬 것이다. 

 

정리=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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