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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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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1-  색이란 무엇인가

 

한문으로 색 色 이라는 글자는 3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형형색색(形形色色)이라고 쓸때는 당연히 지금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색채를 의미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쓸 때는 존재하는 것은 허공과 다르지 않다 라는 의미이므로 여기서 색이란 물질계를 말한다.

주색 酒色 이라고 표현할 때는 sex를 가르킨다.

물론 우리는 여기에서 첫 번째 의미의 색채라는 의미로 색을 다룰 것이다.

  색의  3가지 성질중에는 명도, 채도, 색상이 있다. 물론 하나의 색상에는 이3가지 요소가 모두 들어있다.

  색은 또한 인간의 정신과 관련하여 3가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 1. 과학적인 성격,  2. 심리적인 성격, 3. 상징적인 성격색은 이 3가지 요소들이 어울려 개인이나 사회에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색의 3가지 성격에도 불구하고 색채심리학자 들은 색을 무조건적으로 심리적으로만 해석하려는 편견도 가지고 있다. 아직 만3세정도의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색을 빨강, 검정, 파랑 등 눈에 잘띄는 색을 선호한다. 그리고 또한 여러색 중에서 눈에 잘띌 뿐아니라 길이가 길고 잡기에 편한 것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팔에 가까운 순서대로 집기도 한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색을 물리적인 거리, 길이, 선명도 등 과학적이고 물리적인 입장에서 보고있는데, 이 어린이들의 그림을 보고 검정색을 사용하는 어린이는 어떻고, 보라색을 사용하는 어린이는 어떻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편파적인 것 같다.

  또한, 수많은 조사기관에서 조사한 바로는 검정색이나, 흰색, 회색 등을 가장 좋아한다고 답한 사람들은 별로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승용차나 아파트, 양복 등의 색깔은 대부분 이런 색들이니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색과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어지고있는 색은 별로 일치해 보이지도 않는다.

또한 사람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색이 물품의 종류나, 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매우 민감하게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자신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색을 모든 부분에 적용하여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매우 의식적이고, 또한 편집광적이고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가 특별히 무슨색을 좋아하는지 타인은 느끼지 못할정도로, 어떤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것 같다.

  따라서 본인은 어떤 색을 개인이 선호하느냐에 따라서 그사람의 개성이 결정적인 부분은 오히려 그 사람이 긋은 선을 보고 판단하는 것 보다 덜 정확해 보인다.

  융이 주장하듯이 집단무의식이라는 것이 인간의 뇌리에 깊히 박히어 어떤 색에 대하여 동일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던지, 또는 오라소마에서 주장하듯이 색채마다 고유의 파장이 그 자신만의 차크라에 작용하여 심신에 영향을 미치고있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색에 대하여 느끼는 것은 선에 대하여 느끼는 것처럼 개인적인 차이보다는 오히려 범 인류적인 공통적인 감정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감정을 느끼게하는 미술의 중요한 요소라면, 색 또한 모든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에 선과 색이라는 것이 세계의 공통언어인 조형언어가 될 수있었을 것이다.

  본인은 이번 주제에서 색을 다룸에 있어서 이3가지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생각해 보겠다. 또한, 색채상징이나, 색채심리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은 온전히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 상복을 입을 때 서양에서는 검정색을 동양에서는 흰색을 입는다든지, 동양에서는 황제의 색이 노랑색이었지만 서양은 노랑색의 보색인 보라색이 황제의색이었다든지 등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대부분의 색채심리서적들이 서양인 저자들의 것이므로 서양적인 시각으로 쓰여진 것들이 많다.  본인은 동양적인 시각을 첨가시켜 균형적인 진술을 해보도록하겠다.

 그리고 선을 강의할때처럼 본인의 주관적인 의견도 포함하여 진술할 것이다. 주관적인 느낌들이란 객관성을 가지지 못한것이기 때문에 자칫 커다란 오류를 범할 우려도 있지만, 진솔한 표현들 때문에 친밀감과 공감대가 형성될 수도 있으리라 믿는다.

  색채심리의 경우도 기계론의 입장에 있는 학자들과 신지학이나 색채치료라 불리는 오라소마 등의 주장과는 매우 상반된 주장들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인 자외선이나 적외선이 인간에게 매우 많은 영향을 주듯이 다른색들도 그 고유한 파장에 의하여 인간들에게 많은 심리적 육체적 영향을 미치고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제마의 사상의학에서는 색채가 인간에게 매우 강렬한 영향을 미치고있다고 주장한다.

  본인은 색을 다룸에 있어서 많은 책을 참고로하여 서양과 동양, 본인의 생각과 참고회화작품감상들을 통하여 보다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편파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어보겠다.

 

흰색1-선과 완벽의 색

우리는 흰색으로 나타나는 빛속에서, 우리 자신을 영으로 이끌어가는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 즉 인간의 영적인 부분은 "비추어져 나오는 것" 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혼이 이런방식으로 나를 체험하고있다면, 빛과 색체에 의해 체험되는 모든 것은 지각내용을 가져야한다. 내 속의 빛과 영혼은 동일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지만 빛은 우리에게 영을 나타낸다. 흰색 또는 빛은 영의 혼적인 양상이다.1)

흰색은 모든 색중에서 가장 완벽한 색이다.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한얀 개념은 없다. 하지만 완벽한 것은 거리감을 낳는다. 응답자의 2%만이 흰색을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고 답했다.  흰색을 가장 싷어한다고 답한 사람은 남자의 2%,여자의 1%였다.

흰색은 시작의 색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맨처음"빛이 있으라'라고 말했다.또한 흰색은 부활의 색이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흰색옷을 입고있다.'하얀일요일'은 부활절 뒤의 첫 번째 일요일로 카토릭교회에서는 이날 아이들에게 첫 영성체를 준다.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성체는 흰색이다. 아이들은 세레를 받을때 흰옷을 입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시작한다. 무도회에 처음 데뷔하는 상류계층의 아가씨들은 하얀 이브닝드레스를 입는다. 하얀달걀도 시작의 상징이다. 세상이 달걀에서 나오T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신화이다. 부활절의 달걀도 그리스도의 부뢓을 상징한다.연말연시에는 하얀 팬캐이크를 먹는 나라도 있다. 팬캐이크는 달걀, 밀가루, 우유, 즉 하얀 재료로 만든다.

갖태어난 아이가 먹는 것도 하얀 우유나 젖이다.체스게임을 할때도 흰색이 먼저 시작한다. 바둑을 둘때는 검정색돌이 먼저시작하므로 여기서도 동서양은 반대가 된다.

흰색은 신의색이다. 제우스는 하얀 황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레다는 백조의모습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하얀 비둘기의모습으로 나타나고 그리스도는 흰양이다. 흰 외뿔소는 마리아의 처녀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천사들도 흰옷을 입고 하얀날개들을 달고 있다. 반면 악마는 검은 날개,대개는 박쥐날개를 달고 있다. 인도에서는 흰소를 빛의 화신으로 여기며 중국에서는 흰두루미와 흰 따오기를 불멸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새로 믿는다. 희고 큰새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행운의 사자이다. 여기서 흰 황새가 아기들을 세상에 데려온다는 믿음도 생겨났다. 2)

  우리나라에서도 백호나 흰소, 흰말, 흰사슴 등 흰색의동물이 태어나는 것은 매우 상서러운 일로 간주되었다.

카토릭의 사제들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그리고 그리스도,마리아를 비롯한 성인들의 축일이나 기념일에 미사를 드릴 때 흰옷을 입는다. 이때 흰옷에는 금실로 수를 매우 많이 놓기 때문에 흰색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하지만 순교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에는 빨간옷을 입는다. 빨강은 피의 상징이다. 교황은 흰옷을 입는다. 카토릭 교회의 색채규정에 따르면 교회안의 직위가 높아질수록 의복의 색은 밝아져서 일반사제는 검정을 입고 주교는 보라, 추기경은 빨강, 교황은 흰색을 입는다.  왕과 영왕도 최고의 행사에서 최고의 색인 흰색을 입는다. 왕은 제관식에 흰색을 입는다. 엘리자 베스 여왕은 매년국회가 열릴때마다 국회에서 연설을 하는데 이때는 언제난 하얀외투를 입는다. 예전에는 북방족제비가 가장 고귀한 모피였다. 북방족제비는 원래 갈색이지만 겨울이 되면 하얗게 변하고 꼬리부분만 검은색이된다. 왕의 외무에는 전통적으로 검은점이 박힌 하얀 모피칼라를 입는데 그것이 바로 북방족제비이다. 오직 왕만이 북방족제비옷을 입을 수 있었다. 미국대통령이 '화이트하우스'에사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전통적인 남성복장에서도 흰색은 최고의 색이다.  국제적인 무도회의 초대장에는 '화이트타이'라고 적혀있다. 이는 하얀 넥타이를 매라는 것이 아니라 연미복을 입으라는 뜻이다. 연미복에는 언제나 하얀 나비넥타이를 맨다. 연미복의 검정색 넥타이는 웨이터의 복장이다. 손님으로 까만넥타이를 매는경우는 흡연초대를 받았을 때 뿐이다.. '화이트 타이는'숙녀를 위한 복장규정이기도하며 긴 이브닝드레스를 입으라는 뜻이다. 매년 노벨상이 수상될때면 고전적인 행사복장의 하이라이트를 경험할 수 있다. 흰색은 절대적인 색이다. 흰색은 순수할수록 완벽하며, 다른 것이 첨가되면 그 완벽함이 떨어진다. 3) 

 '백의 민족'이라는 단어는 흰옷을 즐겨입는 민족이라는 뜻이 아니다. '용의 눈물'이나 '태조 왕건'의 드라마를 보라. 우리민족이 흰옷을 즐겨입었는가? 물론 평민들은 흰옷을 즐겨입었겠지요. 그러나 색동저고리나 분홍치마는 무엇인가? 오색찬란한 텔레비젼의 화면을 보면서 어떻게 '백의민족'이란 말이 흰옷을 즐겨입는 민족이라는 말을 생각해 내었을까? 오히려 중동지역 아랍국가들은 왕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얀옷을 입고다닌다. 그들이 바로 백의민족아닌가?

 텔레비젼 '왕과 비'등의 드라마에서 모든 사람들이 흰옷을 입을 때는 바로 제사를 지낼때이다. 백의민족이라는 뜻은 '제사장의 민족'이라는 뜻이다. 그 말은 우리의 조상이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님들이며, 그분들의 직계자손이며 장자로서의 제사권을 상속받은 나라라는 뜻이다.

 '하얗다', '희다'. 라는 말의 어원은 '환하다'와 마찬가지로 태양을 뜻하는 '해'이다. 우리민족뿐 아니라 지구상의 거의모든 민족은 태양을 신으로서 숭앙해왔다. 태양의 빛은 하얗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신수였던 박달나무도 어원은 '밝달나무이다. 즉 밝은 나무인 것이다. 따라서 겉껍질이 유난히 하얀 '자작나무'가 박달나무였는지 의심하는 학자들도있다. 박달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한다.

 민족의 영산도 그이름이 흰머리산인 백두산이다.

음양오행으로 흰색은 서쪽의 색이며, 가을의 신이다. 가을은 서리가 내린다. 서리가 내리므로서 모든 식물의 열매는 그 완숙함을 더하고, 모든 쭉정이와 잎새들은 시들어 죽게된다. 이른바 죽음을 몰고오는 색이다. 몸과 여름을 지나면서 확대되고 번성했던것들이 그에너지를 모두 열매속으로 집어넣은채 열매속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을의 기운을 '숙살지기'라고 부른다. 흰색은 인체가운데서는 폐와 대장에 관련된다.

십우도에 나타나는 하얀소는 인간모두 내부에 있는 참 자아를 의미한다.

  말레비치의 흰색위에 흰색이라든지, 미니멀리스트들은 흰색을 즐겨 사용하였다.  말레비치의 작품은 끌레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흰색은 정신이고 검정은 물질이다" 말레비치는 아마도 그의 작품을 통하여 순수하고 텅빈 완벽함을 찿으려고 했던것같다.

로버트 라이만(1930~)의 1968년에 제작한 ,클라시코>라는 작품은 흰색의 합성안료를 12장의클라시코 종이에 고르게 입혀 격자모양의 대형 사각형으로 조립한 것으로, 그 각각의 종이의 색의각도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다양한 흰색을 내도록 제작되어있다. 4)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에 대유행을 한 모노크롬은 물론 그뿌리를 서양의 미니멀아트에 두고있지만 서양과는 사뭇다르게 매우 정신적이고 동양적인 운동으로 번진 것같다.

박서보나 정창섭 등 대부분의 작가들은 주로 흰색만을 고비하여 화면의 주조를 이루었다. 그들의 닥지작업등은 한지의 물질성을 이용하여, 그결이나 또는 마티에르가 빛을 받음으로서 나타내는 그림자등을 이용하여 조형적인 작업을 하려고했는데, 이는 흰빛이주는 정신성을 최대한 이용해보려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선이나, 물질들이 매우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느낌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하였으나 그 마티에르등을 중시한 것에의하여 물질성의 중요성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래서 물질과 정신의 상호보완적이고 일원론적인 철학의 뒷받침없이 물질성을 근거로한 모더니즘의 철학을 바탕으로한나머지 그들이 의도한 정신성에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 듯보인다.

제스퍼존스가 흰색의 종이를 이용하여 엠보싱처리하여 그린 성조기처럼, 그이상의 정신성을 드러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1) 루돌프 슈타이너 저/양억관,타카시오 이와오 역《색채의 본질》p.24, 물병자리, 2000,

2) 에바 헬러 저/ 문은배 감수/이영희 역《색의 유혹》p.224,예담, 2002, 참조

3)  에바 헬러 저/ 문은배 감수/이영희 역《색의 유혹》p.225,예담, 2002, 참조

4) 데이비드 바츨러 저/김융희 역《색깔이야기》p.27, 아침이슬,2002

 

흰색2-신성과 슬픔으로서의 흰색

 

"바이칼은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정도의크기로, 삼백개가 넘는 여러강들이 흘러들어 섹에서 가장깊고 많은 수량을 자랑하고있는 호수인데 , 그물이 흘러 나가는 곳은 오직하나 앙가라강뿐이다.

바이칼에게는 앙가라라는 딸이 있었다. 앙가라는 예니세이라는 청년을 사모했으나 아버지의반대에 부딫힌다. 어느날 앙가라는 아버지 모르게 예니쎄이를 찾아집을 나선다. 이를 안 아버지 바이칼은 돌을 던져 앙가라를 죽게한다. 앙가라가 흘리는 눈물은 강을 이루어 앙가라강이 되었다. 앙가라는 북극해로 흘러가면서 예니세이 강이된다.

예니세이강이 뜻하는것은무엇인가, 역사책을 보면 우리민족은 본해 그곳에 뿌리를두고있다가 동쪽으로,동쪽으로 이동해 왔다고 나와있다. 자작나무 숲을지나면 바로 바이칼에 도착한다."1)

"자작나무는 신성한 나무다. 냉대지방을 지나면 아마도 끝없이 이어지는 침엽수림들을 볼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작나무는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하여 시베리아벌판까지 그의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는 낙엽수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쪽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망토와 정강이 받이(각반)으로, 노르웨이 사람들에게는 지붕을 이거나 바닥을 까는 재료로, 시베리아사람들에게는 가죽을 부드럽게하기위해 부두질하는데 자작나무의 껍질에 있는 기름성분을 이용했다. 또한,북방 여러민족들이 자작나무의 수피를 이용하여 대롱, 스푼, 접시와같은 조리도구를 만들어사용했으며, 운반도구나 저장용기를 만들어사용하기도했다

 

러시아에서 잎과 줄기를 목욕할때 땀을 뺴고 때를 벗기는데 사용했고 고열과 단독을 치유하는데도 사용했다. 자작나무 수액은 결핵치료제로 이용되기도 했다. 미국인디언들은 감기나 기침, 폐질환에 내수피를 달여서 먹곤했다. 북방민족은 자작나무를 신수로 숭배했다. 자작나무의 수피는 꿈의 형상을 나타내거나 씨족의 상징을 나타내는그림이나 글씨에 사용되었다. 자작나무의 수피가 유난히 흰 것은 제일바깥쪽에 위치한 나무껍질의세포가 비어있으며 겉껍질에 분포하고 있는 수많은 미세구멍들이 빛을 모든 방향으로 반사하기떄문에 흰색으로 보인다.

시베리아원시종족은 나무를 통해서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자작나무를 신수로 숭배하던 북방기마민족에서유래된 천마총에서 발굴된 신라금관과 천마도 장니를 예로 들뿐아니라, 무당들이 굿을 할떄 제단가까이두는 지화를 볼 수 있다. 지화는 흰종이로 오려만든 자작나무를 뜻하는 것이다. 개마고원의사람들에게는 시신을 자작나무껍질로싸서 땅소게 파묻는 관습이있다."2)

자작나무는 군락을 이루고 사람들은 자작나무를 신성한 나무로 받든다.유난히 하얀 빛의 껍질을 가진 하얀색의자작나무는 사람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되는 것이었다.

일전에 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수가 '박달나무'가 아닌 자작나무일 것이라는 주장을 한적이있다.  우리민족은 백색을 숭상하는 민족이다. 그래서 민족의 영산도'백두산'이다. 물론 백색이란 단어는 태양을 의미하는 '해'로부터 파생되었다고했다.  그러나 백색을 숭상하는 마음은 우리민족이 바이칼호근처인 눈덮힌 광야로부터 출발되었다는 기록들을 상기해보면 온천지를 뒤엎는 눈의색이 바로 하얀색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그 눈덮힌 대지위에 하얀색으로 빛나는 나무들은 신성 그 자체의 현현으로 보였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성수라고 일컬어지는 박달나무는 사실 자작나무과에 속하나 자작나무에비하여 그 껍질이 많이 울퉁불퉁벗겨지는 성격이 있으므로 꺠끗한 흰색이라는 느낌이 덜하다. 그리고 자작나무에 비하여 북방한계선이 높지 못하다. 그래서 바이칼호수근처에서 살았던 우리선조들이 실제로 성수로 부른 것은 '박달나무'가 아니라 바로 '자작나무'였을 가능성이 높다.

  시베리아 벌판에 빛을 비추고 따뜻함을 더해주는 태양의 빛깔이 하얀색이었고, 흰눈의 빛이그렇고 흰자작나무가 그렇고 하늘빛이 하얀색이었다면 온천지에 하얀색의 충만함이 항상 있었을 것이다. 온천지를 가득매운 흰색은 우리선조들에게 그 정신성과 영적인 심오감을 던지게 하였고 백색에대한 산성함과 경외로움을 더하게 하였을 것이다.

  고대우리민족에게는 하늘과 해는 거의동의어였다. 하늘과 해는 동시에 하나의거대한 영혼 그자체였다. 그 하늘이나 태양은 천신으로서 인간의모든 영적인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했다. 우리조상이만든 고려청자의 그 비취색은 바로 가을하늘의 색을 빛어내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질적으로 눈으로보이는 하늘의색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가 오면서 사람들은 물질적 현실에서의 하늘이 아닌 보다더 영적인 차원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하늘을 그리고자했다.  그 정신적인 하늘은 아무색도없는 하얀 백색이었다. 우리의조상들이 시베리아벌판 바이칼호수에서 바라본 그 하늘은 바로 백색의 은은한 하늘이었던 것이다. 도공는 그 백색의 하늘을 제현했다. 그것이 백자이다. 따라서 청자에서 백자로의 변화는 도자기기술의 쇠퇴가 아니라, 물질적차원의 하늘에서 고도의 정신적 차원의 하늘색으로 승화된 것이다.

 하얀색은 정신성을 상징한다. 동양화의 비백이나 여백은 중국화나 일본화의 경우보다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의 작품에 강조되어나타난다. 우리 동양화를 감상할 때 항상 아무것도칠하여지지 않은 텅비공간이야말로 그림의 주인공이 아닌가하고 생각이든적이 많다. 우리민족은 그만큼 정신성을 중요시하는 민족이었다.

 아무런 붓의흔적도 남기지 않고 아무행위도 가해지지 않은 텅빈 백색의공간 그 공간들은 바로 '禪의 공간이며,무작위의 공간이다. 회화에서의 백색은 바로 무작위를 생각나게한다.

 

나의작품중 하나이다.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는공간 그 공간은 화면의가장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도 보여지고 감지될 수 있는부분보다는 아무것도 보여질 수 없는 공간이야말로 가장중요한 공간일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중요한 영성이나 고도의정신성은 아마도 감지돌 수가 없는 것일줄도모른다.  그러나 그영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그옜날 백자를 만들던 우리 선조들의 노력과무엇이 다를까?

아래의그림은 위트릴로의 '두유마을의교회'이다. 이그림은 내가 이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중 하나이다. 이그림은 나를 수 없이 울 게 만들었다. 나는 이그림을 볼 때마다 그림에서 눈을 땔 수가 없으며 몇시간을 눈물을 쏟아내며 울지않을 수 없었다. 이그림은 백색이 얼마나 슬프고 아름다운색인지 말해준다.이그림에는 지나는 행인이나 나무 한그루 서있지 않다. 그냥호젓하게 의연하게 때묻은 흰벽의 교회가 고독스럽게 서있다. 이교회는 바로 위트릴로 자신이었으며, 그의 회색빛하늘의 커다랗고 거친붓터치는 그의 슬픈분노였으며, 그가 그린 섬세한 회백색의 벽은 그의 처절한고도 아름다운 그의 인생에대한 관조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분노가 그의 슬픔이 승화하여 이토록 아름답고 숨막히는 장면을 연출해내고 있다. 이토록 외로울 수가 있을까? 이토록 슬플 수가 있을까? 이토록 슬픔을 승화시켜 아름답게 만들수있을까? 이토록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을까? 이토록 진실된 그림도 있을까? 그의 흰색은 아마도 우리조선 도기공들이 빛어내려했던 그하늘의 흰색과 어쩜그렇게도 닮아있을까?

훗날 위트릴로를 치료했던 모리스 메세게는 병 그자체보다도 정신적으로 격렬한 화가의 생활을 보고 놀란다."내 눈에는 비장하고 야윈 그리스도가 생의 고뇌를 호소하고있는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위트릴로 는 프랑스 화가. 파리 출생. 사생아로 태어나 1891년 에스파냐인 미겔 위트릴로의 양자로 입적되어 위트릴로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 르노아르, 드가의 모델로 활동하다가 나중에 화가가 된 수잔 발라동이다. 그때그녀의 나이는16살 또는18살이었다고한다.양복점에다니기도하고써어커스의 댄서가 되기도하며 카바레를 출입하다가 화가들의 모델이 되었다. 독자들은 르노와르의 그림에 자주등장하는 엣된 미인을 기억할 것인데 그녀가 바로 수잔 발라동이다. 그녀는 나중에 화가로 성공하지만 교양없고 방종하며, 노상 위트릴로를 잊고 그녀 자신의본능에 몸을 맡기기도 하였다. 따라서 위트릴로는 고독에서 오는 어머니를 찾는 마음이 더 강했을 것이다.

위트릴로는 이목구비가 섬세하고 ,말수가 적고신경질적인 아이였으나, 때로는 격렬하고 감정에 쫒겨서 난폭한짓도했다. 나쁜 패거리와 어울려 10세에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그 후 직장에서도 한곳에 오래 근무하지 못하였으며, 1899년에는 양아버지의 무지스의 권유로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마침내 알콜중독으로 1901년 입원 가료를 받아야만 하였다. 병원에서 대중요법으로 그에게 과해진 회화제작이 계기가 되어,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를 술로부터 떼어놓기 위해서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데생과 회화수업을 시키게 되고 이로서 위트릴로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품은 자기 주변의 풍경화에 그쳤으며, 그림엽서에서 베낀 것도 많았다. 초기에는 몽마니 등 파리 교외의 풍경을 그리고(Montmany시절, 1901~07), 이어 인상파적인 작풍을 단기간 시도하였으나(인상파시절, 1907∼08), 가장 충실한 위트릴로 독자의 조형세계(造形世界)를 구축한 것은 30세까지의 한 시기였다(흰 시절, 1908∼12). 음주와 난행과 싸우면서 제작한 이 시절의 작품은, 오래된 파리의 거리묘사에 흰색을 많이 사용하여 미묘한 해조(諧調)를 통하여 우수에 찬 시정(詩情)을 발휘하였다.

위트릴로와 모딜리아니의 몽마르트신화는 유명한데, 위트릴로를 찿으려면 시궁창 도랑을 따라가다보면 어디엔가 처박혀 있을거라는 말이 이었다. 동네의 사람들은 위트릴로가 길에서 풍경을 그리고 있으면 그의 이젤을 걷어차곤했기 때문에 그는 방안에서 자신의 동네를 찍은 엽서를 보고 그리는 경우도 많았다그의그림을 몇작품을 바꾸어야 술한병을 살수있었다. 1903년부터 1905년까지 그린 위트릴로의 그림은 어두운 색조와 두터운 질감을 띠고 있다. 그는 '나도 시슬리처럼 그릴수있을까?"하고 되뇌곤했다. 1908년경부터 백색시기가 시작되는데 이 시기의 작품은 석고와 집착제를 혼합하여 사용하는데 회색과 장미색으로 반사된 설경, 크림빛을 띤 흰색벽 등을 그린다.  그의 백색시기는 1915년경까지 지속되며 그가 늘 헤매고 다니는 몽마르트의 구석구석을 그렸으며 엘리포르나 옥타브 미로와 같은 미술 평론가로부터 극찬을 받는다. 그는 후에 당신이 파리를 떠난다면 기념으로무엇을 가지고 가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건물의 회벽 한조각을 가지고 가겠다"고 답했다.   위트리로가 거리를 그리는 것은 생명을 잇는 것이다.그가 그리는 건물은 화려한 것이 아니라 구석이고 골목이다. 또한 교회와 병원이다.그는 그곳에서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서민의 역사와 슬픔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백색시대>로서, 흰 건물에 열중하여 재료에 회반죽을 섞어 벽의 감촉을 표현하였다. 집집마다 엷은 때가 묻은 희끄무레한 벽, 어둠침침한 파장(罷場)의 거리, 인적이 없는 거리, 쇠살문이 닫혀 있는 호텔, 교회 등 시정이 풍부한 그림을 그렸다. 1907∼14년의 이 <백색시대>야말로 모리스 위트릴로의 창조력이 절정에 이른 시대이다. 음주벽은 여전하였으나 걸작품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그려졌다.

미주

1)윤후명<<꽃>>p.161, 문학동네,2003, 서울, 참조

2)전영우 저<<숲과 녹색문화>>pp.154-157,수문출판사, 2002, 서울, 참조

 

흰색3-여성,순수의 흰색

검정색과 대비하여 흰색은 항상 선한색이었다. 물론 그들의 살갗이 흰 백인들의 생각이었으며, 흑인들은 반대의 생각을 했을수도 있다. 흰색은 서양에서 흔히 여자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색이다.  이탈리아의 '비안카', 프랑스의 블랑쉬, 블랑슈트, 캘트족의 '제네비브' '제니퍼'도있다. '캔디'도 로마의 '칸디나'에서 나온 이름이다.  영어의 '페넬라', 아일렌드의 '피놀라'도 '하얀여자'라는 뜻이다. '제스민' '릴리''카밀라','마가리타','데이지'등 이름도 여자의 이름으로 인기가 있다. 도날드덕의 하얀색오리 여자친구의 이름도 '데이지덕'이다.

중국의 색채상징에서 흰색은 여성적인 음에 속하고, 점성술에서도 흰색은 여성의 상징인 달에 속하지만, 태양이 금색이듯이 달에도 흰색보다 은색이 잘 어울리므로 대부분의 점성술사들은 흰색을 은색으로 대치하고 있다.

중세에는 사람을 4가지 기질로 구별했는데 흰색은 흥분하지 않는 조용한 기질의색이다.

위생이 요구되는 색은 주로 흰색이다. 사람들은 주로 하얀속옷을 입는다. 요리사, 미용사, 정육점직원, 의사, 간호사 등은 모두 흰옷을 입는다. 병원의 분위기에서 흰색은 부정적인 여상을 일으킨다. 중환자는 당연히 하얀씨트가 깔린 침대를 연상시킨다. 병원의 분위기를 더욱 아늑하게 꾸미기 위해서는 병실을 밝은 노랑이나 부드러운 분홍으로 칠한다.

한때 정신병원은 '화이트하우스'로 불렸다. 온통 하얀벽으로 칠해진 공간은 매우 삭막하다.

희생의 재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동물은 늘 희다. 자신을 희생한 예수도 '흰양'으로 표현되고 죄를 짊어진 염소는 검정색이다. 하얀 백합은 평화와 순수, 순결의 상징이다. 하얀 백합은 마리아의 무염시대를 상징해서'마돈나의 백합'이라고 한다. 옛날사람들은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귀를 통해 임신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섹스가 죄라면 흰색은 순결이다.

하얀상복은 광택이없는 흰색이다. 하얀 상복은 자아표현을 포기한 색이다. 하얀 상복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환생을 뜻한다. 유럽에서도 예전에는 하얀상복을 많이 입었으며, 여자들이 커다란 흰천으로 머리와 상체를 가리는 지역도 있었다. 여왕과 왕비는 하얀상복을 입는데, 그들은 특별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입는 검은 상복을 입지 않는다. 마리아도 슬픔에 잠긴 성모로 그려질때는 하얀망토를 두르고 있다.  예로부터 죽은자에게 하얀수의를 입히는 것은 부활을 위해서이다. 죽은자를 위한 꽃이나 양초도 흰 것을 쓴다. '하얀여인'이란 귀신을 말한다. 들판을 혜메는 '하얀여인'은 임신의 영이다. 은밀히 사랑을 나누던 남녀가 하얀여인을 만나면'축복'을 받고 임신을 한다고 전해진다.

프랑스대혁명이 끝나자 1830까지 나폴레옹제국의 유행이 시작되었다. 여자들은 소매도 없고 허리선도 없는 지극히 단순한 슈미즈 원피스를 입었다. 귀족을 특징짓는 옛 유행은 부를 과시하는데 초점을 두었지만 시민들은 정신적인 위대함을 과시하고자 했다. 그것도 외적인 가치를 포기해야 내적인 가치가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20세기에 유행한 청바지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다는 진보적인 의식의 표현이었다. 19세기의 하얀원피스는 문화의 진실된 가치를 대변하고자하는 사회계층의 소속감의 표현이었다.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제국스타일'을 권장했고,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은 '신고전주의'로 이에 답했다. "이제 여자들은 거의 모두가 흰옷을 입고 남자들은 검은옷을 입었다"검은 복장은 이미오래전부터 특별한 축제일에 입었지만 흰색은 새로운 현상이었다. 하얀숙녀복은 전유럽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하얀숙녀복은 고대그리스를 연상시켜서 신고전주의의 이상이 되었다. 당시의 시민계급은 고대그리스를 이상향으로 여겼다. 괴테는 당시의 시대감각을'영혼은 그리이스의 땅을 찿아헤멘다'라고 표현하였다. 학술적 예술적공적에 따라 사람을 판단했던 정치가들보다는 철학자들이 고대 그리스를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이상화했다. 가난한 시민계급출신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로 등극한 것도 이 이상에 부합했다.

건축가들은 고대 그리스의 부활을 시도하여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충실히 모방했다. 모든 것은 흰색이었다. 신고전주의가 생각했던 고대그리스는 흰옷을 입은 철학자들이 하얀대리석 기둥 사이를 거닐며 토론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의복의 장식이라고는 주름뿐이었고 건축물의 장식도 부조뿐이었다. 흰색의 소박함이 곧 고귀함을 뜻했다.

하얀고대에 열광했던 괴테는'교양있는 사람들은 색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괴테와 그와 동시대인들은 화려한 색일수록 야만적인 취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자연인, 원시민족, 어린아이들은 최고의 에너지를 가지고있으며 색에 끌린다."

교양있는 그리스인의 취향에 관한 괴태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었다. 괴테의 《색체론》이 출간될즈음, 고전연구가는 그리스의 사원과 조각이 원래는 채색되어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사원의 벽에는 안팎으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으며 기둥에 장식된 나뭇잎도 녹색으로 칠해져있었다. 대리석 형상도 원래는 화려한 색상을 입고있었고 자연스런 피부색이 칠해져있었으며 눈에는 유리조각이 붙어있었다. 괴테와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완벽하게 보인 것은 색이다 떨어져나간 폐어의 모습이었다. 1817년 영국의 고전연구가 윌리암 겔은 고대그리스의 색체에 관해"어떠한 민족도 강렬한색에 대해 그처럼 열정적이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괴테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고전풍의 숙녀복유행은 색은 포기했지만 다른 매력을 지니고있었다. 과감한 여자들은 그리스의 여신들처럼 거의 알몸이드러날 정도로 속이 훤히 들어다보이는 소재의 옷을 입었고 장단지까지 가죽끈으로 묶은 샌달을 신었다. 스타킹은 신지 않았지만 발가락에 금장식을 했다. 유행에 따르려면 원피스와 신, 장신구를 합쳐서 250g을 넘지 않아야했다. 그리스화병형태의 작은 핸드백도 앙증맞은 액서서리였다. 여신의 옷은 서늘한 기후에는 맞지 않아서 많은 여자들이 폐렴으로 죽어갔고 '모슬린병'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당시 유행하던 드레스는 특히 얇은 아마포인 모슬린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스풍의 원피스는 너무 불편해서 오랫동안 유행하지 못했지만 흰색은 수십년동안 가장 우아한 색으로 남았다. 흰색은 옷이 더렵혀질 수 있는 활동을 모두 해줄 몸종을 전제로했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흰색이 크게 유행하면서 하얀웨딩드레스가 생겨났다.흰색의 정치적의미는 '항복'이다. 흰색이 깃발이 될때는 '절대왕정'을 상징한다.

'하얀죽음'은 동사凍死를 뜻한다.

에스키모인들의 눈을가르키는 단어는 마흔가지가 넘는다고한다. 검정과 흰색은 기술디자이너들이 가장좋아하는 색이다. 검정과 흰색은 유채색이 아니므로 모든 관심을 기능적으로 돌려준다. 기술은 색이 없어도 작동하므로 기술자에게 색은 장식일 뿐이다.

흰색은 텅빈과 동의어이다. '하얀밤'은 '잠못이루는 밤'이고, 알붐'은 원래 하얗고 스스로기억과 사진으로 채워가야할 텅빈 책이다.

하얀식품은 귀하게보인다. 마가린'은 '진주'를 뜻하는그리스어에서 나온 이름이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기전에 바탕칠을 하는데 이때 흰석고나 석회를 쓴다. 석고는 흰돌을 갈아만든 분말이다. 분필과 파스텔도 석회가아니라 석고로 만든다.

화가들이 사용하는 가장 유명한 흰색인 '납의흰색-징크화이트'은 납을 원재료로만드는데 독성이있었지만 당시에는 산재보호규정을 하지않아 노동자들의몸이 마비되고 심지어 목숨을잃기까지 했다.1930년경에 '납의 흰색'보다 불투명한 '티탄흰색'이 나왔다. '티탄흰색'은 검은 티타늄광석에서 제조된 것으로 독성이 없다.

화이트칼라는 사무직직원의 신분을 상징하는것이었다. 합성섬유는 흰색보다 더 흰색을 내지만 원래는 회색이어서 희게 만들려면 염색을 해야만 했다. 누렇게 변색된 합성섬유를 표백할 수가 없는데 표백제가 흰 색소를 분해하기 때문이다. 합성섬유용 특수세제에는 흰색을 빛나게 만드는 형광물질이 들어있다.

  흰색을 더욱 희게보이는데는 미세한 분량의 파랑색이 첨가되면 좋다. 실제로 어떤 화가는 표백제를 만들 때 미량의 파란색색소를 첨가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결혼식 때 신부는 자기의 옷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골라 결혼식 때 입었다. 1600년 앙리4세와 결혼했던 마리드 메디치처럼 흰옷을 입고 결혼하는 부유한 사람도 있었다. 그옷은 황금수로 치장한 엄청난 화려한 옷이었지만 웨딩드레스는 아니었다.1840년 영국의 빅토리아여왕은 하얀드레스에 면사포를 써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있던 영국의 레이스산업을 후원하려고 했던 그녀의 소망은 성취되었고 신부의 면사포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1853년 황제 나폴레옹3세가 결혼했을 때 신부 웨젠도 하얀 베일을 썼다.

1808년 처음으로 직조기가 나와 직물의 값이 매우 저렴해졌다. 1830년부터는 재봉틀이 생겼고, 많은 여자들은 하루만이라도 여왕이 되고싶은 꿈을 하얀 웨딩드레스로 이룰수있었다.

신부는 결혼식장에서 가장 화려해야만 한다. 그래서 신부보다 눈에 띄는 복장으로 결혼식에 참가해서는 안된다. 결혼식장의 하객으로서 흰원피스나 모자는 신부행세한다는 인상을 주기쉬우므로 피해야한다.1)

오라소마에서는 흰색을 '크리어'라고 표현한다. 즉 투명한색이다. 오라소마에서는 모든 색을 빛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흰색이 첨가되면 그 색의 빛이 흐려지지만  해석은 정반대로 그색의 특성이 강화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당연히 크리어는 투명하고 색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빛이 섞여진것이다. 즉 클리어는 모든 빛깔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전부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클리어는 '얼어붙은 빛',우리들이 자기자신을 알아채는 거울, 또는 왜곡된 거울과도 같다. 이 클리어의 플러스 성질이 나타날 경우에는 모든 측면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이상주의면서 인도주의이며 연민심이 있으며 인간애가 넘친다. 자선사업과 인도주의 운동에도 나서기 때문에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많고 부드럽고 순수한 사람이다.

정직하고 좋은 의미에서 단순하기 때문에 항상 자기반성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마이너스로 움직이던 측면을 개선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민감함과 부드러움을 함께갖고있어서 모든 것을 전부 통합한 뒤에 더 도움이 되는 새로운 것을 획득할 수가 있다.

이 클리어의 마이너스 성질이 표현되면 그떄그때에 따라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 이야기를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또 그때그때에 따라서 마이너스 측면이 나타나기때문에 균형을 잘 잡아줄 필요가 있다. 공상에 빠지고 비현실적인면도 있어서 그럴때는 레드의 힘을 빌려땅에 발을 접지시켜줄 필요가 있다. 모든 빛의 특성을 가진 반면에 개성적이거나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고 생각없이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측면이 있다. 과거에 깊은 고통을 받은적이 있으며, 그 경험이 분노로 바뀌거나 모순에 찬 행동으로 옮겨질때는 블루가 도움이 된다.1)

 

말레비치<흰색위에흰색>1918

 

카시미르 말레비치(1878-1935)는 일반적인 빛 즉 '색=빛'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순수에너지를 탐구했다. 빛은 색과 동일하고 색은 빛과 동일하다. 빛을 추구하는 것은 빛의 원천으로 진리추구가 목적이고, 진리추구가 그러듯이 그것은 무한히 지속될 수 있고, 보잘것없는 것에 이를 수도 있다. 그의 빛에 대한 개념은 일반적인 빛(자연의 빛)과 이성의 빛(진실됨, 진리)라고 부르는 것을 포함한다. 무지개의 관찰은 그로 하여금 어디에 진실한 실체가 있는지 자문하게 했다. 그것은 그로하여금 '빛과 어둠은 우리가 특별한 프리즘(물방울? 뉴턴의 프리즘?)의 도움으로 알 수 있는 그 무엇의 양면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했다.  그 프리즘을 통해 우리는 같은 그 무엇이 수천의 다른 양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말레비치에 의하면 ,모든 예술적 흐름은 색이 다르게 흡수된 프리즘이다. 우리는 프리즘을 통해 작품속에 표현된 그대로 실체의 본질을 관찰할 수 있다.

'회화는 색의 구성밖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 발견은 시각적 혼합덕택으로 마티에르에서 벗어나 채색된 구성에만 의존할 수있게 되었다.'회화는 점점 공간속으로 빠져들고 동적인 상태에 이르며 무채색이 된다.'하지만 채색된 마티에르로서 회화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레비치는 주장한다. 회화는 무채색의 비객관적인 에너지가 되기위해 모든색의 차이를 잃게되는 새로운 위상에 이르게 된다. 절대주의적 백색 정사각형은 '이 움직임의 한계점'으로 구성한다. 색=빛(그에의하면 신인상파들에 의해 발견된 새로운 진리)대신에 말레비치는 회화의주제로 흰빛자체를 제시한다. 지고의 순수한 하모니의 상징이며,'기지와 감수성으로 가득찬 사막'인 흰빛은 '아무것도 아닌 것'의 표현이고 상징이기 때문에 더욱더 빛과 진리의 본질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가 색을 배척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배척을 통해 화가는 색의 원천인 빛에너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말레비치의 백색 정사각형과 함께 우리는 색=빛의 추구와 회화에서 그것을 표현하려는 욕망을 본다.2)`

미니멀리즘 하면 이상스럽게도 흰색이 연상된다. 미니멀리스트들의 작품이 흰색으로남아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채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멀 작품은 흰색을 연상시킨다.콘래드는 하얀 것들의 수많은 사례들을 가지고 일반화되고 통념화 된 흰색을 해체하고있다면 멜빌은 그 반대 방향에서 하나의거대한 하얀 존재로 시작하여 자신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흰색의 관념까지도 흔들어 놀 수 있다

"하얀색이 많은 자연물에 그 자체의 고유한 덕을 나누어 자연물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해준다"흰색의 갖아 깊은 내부관념 속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우리를 놀라게하는 피의 빨강색보다 더 영혼을 공포로 몰고 간다. 흰색의 표면적인 통일성속에는 어떤 불안감이 있다. 덕목의 뒷편에는 공포가 숨겨져있으며, 순수함의 밑바탕에는 죽음이 자리잡고 있다. 소중한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믿음과 체계, 모든 희망과 욕구, 모든 익숙한 입장, 모든 환영등 모든 것이 무화된다. 하얀색의 가장 끔찍한 사례들가운데 하나가 '우유빛 안개;'이다. 그것은 밤보다 어둡다. 맬벨에게있어서 색의 진실은 기껏해야 '미묘한 눈속임'이다.

'분노의 행위와 정념의 피같은 오점들을 정제해낸 이러한 하얀빛은 인간에게 비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과 반대로 인간안에 조용하게 자리잡고있는 신성을 드러낸다."

앙리미쇼는 절대적인 흰색, 모든 하얌을 넘어서는 흰색, 흰색이 되어가고 있는 흰색, 흰색이 아닌 것을 모조리 근절해버리고 배제해버리면서 타협하지 않는 흰색, 그 하얌 때문에 비명지르면서 미쳐버린, 격노한 흰색, 광신적이고 격렬하며 불가사의한 희생자, 인정사정없고 흉악하고 끔직한 전기자극같은 흰색, 흰색의 작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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